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줄거리, 인물과 상징 분석, 결말과 영화의 메시지

by sallynote 2025. 11. 7.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포스터

기억을 잃은 살인자의 줄거리

영화의 주인공 ‘병수’(설경구)는 한때 사람을 죽였던 연쇄살인범이지만,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걸려 조용히 수의사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살인을 “세상을 악으로부터 정화하는 행위”라고 정당화하며, 평범한 노인으로 살아가는 척하지만 머릿속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그는 매일 일기를 쓰며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했는지 붙잡으려 애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의 조각들은 점점 흩어지고, 현실과 과거가 뒤섞여간다.

병수에게는 사랑하는 딸 ‘은희’(김설현)가 있다. 은희는 그런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동시에 그가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 병수는 어느 날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할 뻔하고, 상대 운전자 ‘태주’(김남길)와 마주한다. 그 순간, 병수는 묘한 직감에 사로잡힌다. “이 남자… 나 같은 냄새가 난다.” 그는 본능적으로 태주가 자신과 같은 살인자임을 알아채지만, 병의 진행으로 인해 확신이 점점 흐려진다.

이후 은희가 태주와 가까워지는 모습을 본 병수는 강한 불안을 느낀다. 태주는 겉보기엔 젊고 친절한 형사이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폭력성과 사이코패스적 본성이 숨겨져 있다. 병수는 기억의 틈새 속에서 과거의 살인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그것이 현실인지 망상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는 ‘태주를 막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점점 광기로 빠져든다. 그의 일기장에는 점점 더 많은 공백과 왜곡이 생기며, 관객은 병수의 시점에서 혼란스러운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병수는 태주가 진짜 살인자임을 증명하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기억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를 의심하고, 심지어 그의 딸마저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관객에게도 지속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병수의 기억은 진실인가, 망상인가?” 그는 자신이 보호하려 했던 딸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결단을 내린다. 병수는 태주와의 결전을 준비하며, 한때 자신이 저질렀던 죄악의 그림자와 마주선다. 그의 기억은 점점 사라지지만, 오직 하나만은 남아 있다. “딸을 지키겠다.”

마지막 대결에서 병수는 태주를 숲속으로 유인해 싸움을 벌인다. 그는 병든 몸으로 끝까지 태주를 제압하고, 치명상을 입힌다. 그러나 그 과정이 실제인지, 그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환상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태주의 시체도, 사건의 진상도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오직 병수의 시점 속에서만 ‘정의로운 살인’이 완성된다. 그가 진짜로 태주를 죽였는지, 아니면 망상 속에서 그렇게 믿고 있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이 모호함이 바로 영화의 핵심이다. 기억이 곧 진실일 수 있을까?

 

인물과 상징 분석

살인자의 기억법은 모든 인물이 상징적인 존재로 기능한다. 먼저 병수는 ‘죄의식과 망각의 경계선’에 선 인물이다. 그는 과거의 살인을 정당화하며 살아왔지만, 병이 진행될수록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다. 알츠하이머는 그에게 일종의 ‘신의 벌’처럼 작용한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신이 저지른 죄를 잊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병수는 이 모순된 상태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싸운다.

그의 딸 은희는 ‘순수함과 용서’의 상징이다. 그녀는 병수가 인간으로 남게 하는 마지막 끈이다. 은희의 존재는 그가 다시 살인을 멈추려 하는 이유이며, 동시에 그가 다시 살인을 결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수는 딸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다. 이는 인간이 죄를 반복하면서도 그 안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역설적인 심리를 보여준다.

반면 태주(김남길)는 ‘절대적 악’의 구현체다. 그는 병수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자, 현재의 악을 상징한다. 젊고 세련된 외모 뒤에 숨은 무감각한 폭력성은 현대 사회의 사이코패스를 대표한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흉내내지만, 실제로는 공감 능력이 없다. 병수가 과거에 스스로 ‘정의로운 살인자’라 믿었다면, 태주는 순수한 악의 본질을 보여준다. 두 인물의 대립은 결국 ‘죄의식이 있는 악’과 ‘죄의식이 없는 악’의 충돌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기억의 왜곡’은 상징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병수의 일기장은 ‘진실과 거짓이 섞인 문서’다. 관객은 그의 기록을 따라가지만, 그 안에는 허상과 현실이 공존한다. 이 구조는 곧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드러낸다. 또한 잦은 플래시백과 시점 전환은 병수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을 그의 머릿속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숲’은 상징적이다. 병수는 늘 숲속에서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묻는다. 숲은 그에게 죄의 공간이자, 동시에 속죄의 공간이다. 마지막 결전 역시 숲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문명화된 사회에 살아가도, 결국 본능과 본성이라는 원초적 공간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결국 숲은 인간 내면의 어둠을 시각화한 공간인 셈이다.

 

결말과 영화의 메시지

살인자의 기억법의 결말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병수가 태주를 죽였는지, 아니면 망상 속에서 그를 처단했다고 믿는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은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병수가 자신의 죄를 인정했는가, 그리고 인간으로서 마지막 자각을 했는가’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병수는 요양원에 머물며 여전히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믿으며, “나쁜 사람을 잡았다”고 되뇌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나쁜 사람’이 실제 태주인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지는 관객의 해석에 맡겨진다.

이 열린 결말은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인가를 드러낸다. 병수의 알츠하이머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은유다.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만 남기며, 불편한 진실은 잊으려 한다. 병수는 그 과정을 통해 죄의식을 잊고, 자신을 ‘정의로운 사람’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그가 끝내 잊지 못한 것은 ‘사랑하는 딸에 대한 감정’이다. 이 점에서 영화는 인간의 악함보다, 인간의 감정이 가진 본능적 진실을 강조한다.

또한 이 영화는 ‘선과 악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를 보여준다. 병수는 살인을 저질렀지만, 동시에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다. 반면 태주는 젊고 멀쩡한 경찰이지만, 완전한 악의 화신이다. 결국 감독은 관객에게 묻는다. “누가 진짜 살인자인가? 그리고 진짜 인간다운 선택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도덕적 판단을 넘어, 인간 내면의 본질을 파헤친다. 병수가 끝내 자신의 죄를 잊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태주를 막으려 한 것은, 그 안에 남아 있는 ‘양심의 흔적’ 때문이다. 그가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남긴 마지막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은, 인간이 아무리 타락해도 완전히 괴물이 되지 않는다는 희망을 전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기억이라는 불안정한 프리즘을 통해 인간의 죄와 속죄를 다룬 작품이다. 원신연 감독은 원작의 철학적 질문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며, 심리적 긴장감과 서사적 밀도를 동시에 잡았다. 무엇보다 설경구의 연기는 이 영화를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그는 인간의 공포, 후회, 그리고 마지막 구원을 한 몸에 담아냈다. 결국 이 영화는 ‘살인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 속 인간의 이야기’다. 기억이 사라져도 감정은 남고, 죄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살인자의 기억법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메시지다.